초등현장 “윗돌 빼 아랫돌 괴기”…교육부 “협조 필요”
교육당국이 내년 국·공립유치원 추가 신·증설 계획을 공립 병설유치원 집중 확대로 가닥 잡자 초등학교 현장이 술렁이고 있다. 병설유치원 학급을 확보하려면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를 늘리거나 특별교실을 줄여야 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교육여건 악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사립유치원 측의 폐원 압박으로 국·공립유치원 확대가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초등학교 현장의 협조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30일 교육당국에 따르면, 각 시·도 교육청은 내년도 관내 공립유치원 추가 신·증설 계획을 교육부에 냈거나 제출을 앞두고 있다. 교육부는 이를 취합,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다.
이는 내년도 국·공립유치원 신·증설 목표를 ‘500학급 확충’에서 ‘1000학급 확충’으로 조정한 것에 따른 것이다.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의 파장으로 유치원 공공성 강화 요구가 커지자 정부는 국정과제인 ‘국·공립유치원 원아비율 40%’ 조기 달성을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각 시·도 교육청이 내놓은 내년도 공립유치원 추가 신·증설 계획은 병설유치원을 통한 확충이 핵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존 초등학교 교실을 활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신속한 학급 확보가 가능하고, 예산도 비교적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병설유치원 1개 학급 설치 예산은 6000만원 정도 드는 것으로 알려져 다른 공립유치원 형태보다 훨씬 저렴하다.
관건은 병설유치원 확보 방안인데, 방안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학급당 학생 수 상향, 특별교실(실험·실습·예체능 활동 목적) 활용, 유휴교실 활용 등이다.
유휴교실을 활용해 병설유치원 학급을 늘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공립유치원 확충이 필요한 지역은 대개 학령인구가 많은 도시 지역이기 때문에 유휴교실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결국 특별교실을 줄이거나 학급당 학생 수를 교육청이 정한 기준까지 최대로 끌어올려 빈 교실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교육청들도 이를 고려해 초등학교 현장에 병설유치원 학급 확보 할당량을 요청하거나 학급당 학생 수 기준까지 상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수도권 소재 한 교육청은 병설유치원 학급 수를 늘리기 위해 관내 초등학교에 교실을 2개씩 빼달라고 요청했다. 지방 소재 한 교육청은 학급당 학생 수를 27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학생 수가 많은 서울 초등학교의 학급당 학생수(22.9명)를 웃도는 수치다.
하지만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초등학교 교육여건이 악화한다는 것이다. 경기도 소재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공립유치원을 늘리는 것은 찬성하지만 초등학교의 희생을 토대로 이를 실현하려는 것에는 반대한다”며 “병설유치원 확보를 위해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를 늘리거나 특별교실을 줄이면 결국 초등학교 교육여건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한 피해와 불편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B씨는 “학생 개개인에 대한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학급당 학생 수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21.3명 수준으로 줄여도 모자를 판인데 오히려 이번 조처로 더 역행하게 됐다”며 “교육당국이 나서서 초등학교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콩나물 교실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국·공립유치원을 신속히 늘리기 위해 교육현장이 고통분담을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지금처럼 윗돌 빼 아랫돌 괴는 식의 행정은 고통을 나눠 갖는 게 아니라 지속하게 하는 꼴“이라며 ”초등학교 현장의 이해를 구하거나 목소리를 들어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어야 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초등학교 현장에 이해와 협조를 요청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최근 사립유치원 폐원 규모가 늘고 있고 유치원 공공성 강화 요구도 커지고 있어 국·공립유치원을 시급히 늘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유아들과 학부모들의 입장을 봐서라도 초등학교 현장의 협조와 배려를 바란다”고 말했다.